본문 바로가기

LIFE

참교육을 보며 가장 불편했던 이유

넷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을 보면서 생각보다 많이 불편했다.

보통 사람들은 드라마 속 악역을 보면서 화를 낸다. 학교 폭력을 저지르는 학생, 책임을 회피하는 교사, 자기 자식만 감싸는 학부모를 보며 분노한다.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른 이유로 불편했다.

한때 그 현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왕따를 봤고, 집단 괴롭힘을 봤고, 힘 있는 아이들이 힘없는 아이를 몰아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문제는 그때 내가 정의로운 사람이었느냐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아니었다.

나는 피해자를 도와주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가해자와 싸우지도 못했다.

그저 모른 척 지나갔다. 정확히 말하면 두려웠다. 나까지 표적이 될까 봐.

그래서 외면했다.

참교육을 보면서 가장 무서웠던 것은 폭력을 행사하는 가해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침묵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왜냐하면 그 안에 과거의 내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은 단순히 몇 명의 나쁜 아이들 때문에 발생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이 침묵할 때 완성된다.

누군가는 괴롭히고, 누군가는 방관하고, 누군가는 못 본 척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은 무너진다.

드라마 속 이야기가 통쾌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결국 현실에서는 그런 정의가 쉽게 실현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 불편했던 부분은 학부모의 모습이었다.

"우리 아이는 그럴 리 없다." "우리 아이만 손해 보면 안 된다." "내 아이만 잘되면 된다."

어쩌면 대한민국 교육이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이런 생각이 사회 전체에 퍼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교육은 경쟁이 되었고, 학교는 성적을 생산하는 공간이 되었고, 공동체는 사라졌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에게 공부는 가르쳤지만 사람답게 사는 법은 가르치지 못하게 되었다.

남을 밟고 올라가는 법은 배우지만, 넘어진 친구를 일으켜 세우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교사는 교육자가 아니라 민원 처리 담당자가 되었고, 학생은 배움의 주체가 아니라 성적 관리 대상이 되었으며, 학부모는 교육의 동반자가 아니라 소비자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교권 회복만이 아니다.

학생 인권과 교권이 함께 존중받는 학교다. 경쟁보다 공동체를 배우는 교육이다. 성적보다 인간을 먼저 만드는 교육이다.

참교육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학생들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교사도, 학부모도, 사회도,그리고 과거에 침묵했던 나 자신도 함께 바뀌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학교는 결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학교가 병들었다면 사회가 병든 것이다. 그리고 교육이 무너진 나라의 미래는 결코 건강할 수 없다.

늦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포기할 만큼 늦지는 않았다. 지금이라도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아이들이 경쟁의 기술보다 인간의 품격을 배우는 곳으로. 침묵하는 방관자보다 용기 있는 시민을 키우는 곳으로.

대한민국의 학교가 다시 그런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