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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하와이 사탕수수밭의 피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먹여 살리다

너네 ‘백범’ 김구 하면 뭐가 가장 먼저 떠올라?

동그란 안경, 강렬한 눈빛, 임시정부 주석, 독립운동의 상징 같은 이미지들 말이야. 그런데 김구 선생이 평생 마음속에 품었던 소원이 하나 있었어. 바로 하와이에 가보는 거였지.

의외지?

그런데 그건 관광이나 휴양 때문이 아니었어. 그곳에는 대한민국이 절대 잊어선 안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거든.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그들에게 “역사의 빚”을 지고 있는지도 몰라.

 

“하와이에 꼭 가고 싶다”던 김구의 진짜 이유

김구 선생은 생전에 한 번도 하와이 땅을 밟지 못했어. 그런데도 광복 이후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이런 말을 했다고 해.

“하와이 동포들을 만나 꼭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왜였을까?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는 말 그대로 버티기조차 힘든 상황이었어. 월세 낼 돈도 부족했고, 독립운동가들 식사조차 해결 못 하는 날이 많았지.

독립운동은 영화처럼 거창한 의지만으로 되는 게 아니었거든.

총도 필요했고, 이동 경비도 필요했고, 연락망 유지비도 필요했고, 무엇보다 사람을 먹여 살릴 돈이 필요했어.

그리고 그 절체절명의 순간마다 태평양 건너에서 임시정부에 숨을 불어넣어 준 사람들이 있었어. 바로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던 조선인 노동자들이었지.

 

일당 1달러도 안 되던 사람들이 만든 기적

1919년, 임시정부는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독립공채’를 발행했어.

쉽게 말하면 이런 거야.

“우리가 독립하면 나라가 반드시 갚겠습니다.”

지금의 국채 같은 개념이지.

그런데 당시 미주 지역 목표 모금액이 무려 25만 달러였어. 지금 가치로 환산하면 엄청난 규모야.

문제는 그 돈을 내야 했던 사람들이 누구냐는 거지.

하와이 이민자들은 대부분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어. 섭씨 40도를 넘는 폭염 속에서 하루 10시간 넘게 노동했는데도 일당은 1달러가 채 안 됐어.

말 그대로 피와 땀으로 번 돈이었지.

그런데도 그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독립공채를 샀어. 생활비를 아껴가며 조국 독립에 돈을 보탰지.

사실 이건 투자라고 보기 어려워.

독립이 성공할지도 불확실했고, 돈을 돌려받을 가능성도 희박했거든.

그러니까 이건 채권 구매가 아니라 사실상 헌신이었어. 조국을 향한 마지막 희망에 자신의 삶을 걸었던 거지.

 

임시정부를 움직인 건 이름 없는 노동자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이야기하면 영웅들만 떠올려.

하지만 영웅 뒤에는 반드시 그 영웅을 버티게 만든 사람들이 있어.

놀랍게도 임시정부 운영 자금의 60% 이상이 미주와 하와이 동포 사회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야.

그 돈이 없었다면 임시정부는 오래 유지되기 어려웠을 거라는 평가도 많지.

이봉창 의 의거도, 윤봉길 의 상하이 의거도 결국은 누군가의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어.

폭탄 하나에도 돈이 들고, 이동에도 돈이 들고, 은신에도 돈이 들었으니까.

그리고 그 자금의 상당 부분에는 하와이 노동자들의 손때 묻은 달러가 있었던 거야.

결국 역사를 움직인 건 거대한 권력자가 아니라 이름도 남기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이었던 셈이지.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의 빚’

광복 이후 정부는 뒤늦게 독립공채 상환 작업을 시작했어. 하지만 많은 후손들은 돈을 돌려받지 않았어.

대신 공채를 기념관에 기증했지.

“이건 돈이 아니라 우리 조상이 나라를 위해 바친 마음이다.”

이 말이 정말 묵직하게 다가와.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누리는 자유와 일상은 그냥 얻어진 게 아니거든.

누군가는 낯선 타국의 사탕수수밭에서 허리가 휘도록 일했고, 누군가는 굶어가며 조국 독립 자금을 모았고, 누군가는 이름도 없이 사라졌어.

우리는 그 희생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거야.

 

하와이를 다시 보게 되는 순간

보통 하와이라고 하면 대부분 와이키키 해변이나 휴양지를 먼저 떠올리잖아.

하지만 누군가에게 하와이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조국 독립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장소였어.

그러니까 다음에 하와이 사진을 보거나 여행 갈 일이 생기면, 잠깐만이라도 그 옛날 사탕수수밭에서 조국을 위해 달러를 모았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자.

그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지금의 우리도 없었을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