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FE

전자책의 전쟁이 끝났다. 이제는 ‘독서 경험’을 파는 시대다

AI가 세상을 뒤흔드는 동안 조용히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하나 있다. 바로 독서 플랫폼 전쟁이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이 시장을 "전자책 서비스" 혹은 "오디오북 서비스" 정도로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 Everand가 내놓은 전략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들은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묶은 것도 모자라 독서 커뮤니티까지 하나의 구독 상품으로 통합해 버렸다. 겉으로 보면 단순한 구독 상품 개편처럼 보인다.

하지만 서비스 기획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콘텐츠 플랫폼의 승부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아마존이 팔던 것은 책이었다

그동안 시장의 절대 강자는 아마존이었다.

전자책은 Kindle.

오디오북은 Audible.

독서 커뮤니티는 Goodreads.

각 영역마다 압도적인 점유율을 확보했다. 문제는 이것들이 서로 다른 서비스라는 점이다.

책을 읽고, 후기를 남기고, 사람들과 토론하고, 오디오북으로 이어 듣는 과정이 하나의 경험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사용자는 여러 서비스를 오가야 한다. 아마존은 강력했지만, 경험은 분절되어 있었다.

 

Everand는 책이 아니라 독서 경험을 묶었다

Everand의 이번 전략은 단순하다. "왜 사용자가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구분해야 하지?"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출근길에는 오디오북으로 듣고, 점심시간에는 스마트폰으로 읽고, 퇴근 후에는 태블릿으로 이어서 읽는다.

독자는 이미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 그런데 플랫폼은 여전히 포맷별로 나뉘어 있었다.

Everand는 이 벽을 없애버렸다.

읽다가 듣고, 듣다가 읽고, 그 진행 상황이 자동으로 동기화된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전자책인지 오디오북인지조차 중요하지 않다.

그냥 "한 권의 책"일 뿐이다. 서비스 기획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영리한 접근이다.

사용자가 고민해야 할 선택지를 제거했기 때문이다.

 

진짜 무기는 Fable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Fable 인수다. 많은 사람들이 전자책과 오디오북 통합에 주목하지만, 사실 핵심은 커뮤니티다.

책은 원래 혼자 읽는다. 그런데 사람은 읽은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 한다.

추천하고 싶고, 토론하고 싶고, 공감받고 싶다. BookTok이 폭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책 자체보다 책에 대한 대화가 더 강력한 콘텐츠가 된 것이다. Everand는 이 부분을 정확하게 노렸다. 책을 읽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북클럽으로 이동하고, 토론에 참여하고, 다른 사람들의 감상을 본다. 결국 독서는 콘텐츠 소비에서 관계 형성으로 확장된다.

 

[Source: https://www.everand.com/ 캡쳐]

 

왜 커뮤니티가 중요할까

플랫폼 사업자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콘텐츠는 복제할 수 있다. 커뮤니티는 복제하기 어렵다. 경쟁사가 같은 책을 확보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내가 남긴 리뷰, 내 독서 기록, 내가 참여하는 북클럽, 내가 쌓아온 인간관계는 가져갈 수 없다.

그래서 플랫폼의 최종 승부는 항상 커뮤니티로 흘러간다.

유튜브도 그렇고, 인스타그램도 그렇고, 디스코드도 그렇다. 결국 사람을 붙잡는 것은 콘텐츠가 아니라 관계다.

 

락인의 진화

서비스 기획 입장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락인 구조다. 예전 플랫폼의 락인은 데이터였다.

ERP는 거래 데이터. CRM은 고객 데이터. 그룹웨어는 문서 데이터. 하지만 앞으로는 조금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Everand가 만드는 락인은 세 층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콘텐츠.

두 번째는 독서 기록.

세 번째는 커뮤니티 관계다.

사용자가 서비스를 오래 사용할수록 서재가 쌓이고, 독서 목표가 쌓이고, 리뷰가 쌓이고, 친구가 쌓인다.

결국 플랫폼을 떠나는 순간 잃게 되는 것이 너무 많아진다. 이것이 진짜 락인이다.

 

스포티파이도 노리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독서 시장에 스포티파이까지 들어왔다는 것이다. 원래 음악 플랫폼이던 회사가 오디오북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건 단순한 사업 다각화가 아니다. 사람들이 이동 중 소비하는 시간을 놓치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음악을 듣던 시간. 팟캐스트를 듣던 시간. 오디오북을 듣는 시간. 결국 모두 같은 시간 자원을 놓고 경쟁한다.

독서 시장은 이제 출판 시장이 아니라 시간 시장이 되고 있다.

 

주목해야 할 포인트

이번 Everand 사례는 서비스 기획 시 중요한 교훈을 준다.

첫 번째. 사용자는 기능을 원하지 않는다. 경험의 단절이 없어지길 원한다. 전자책과 오디오북을 따로 관리하는 것은 사용자 문제가 아니라 플랫폼 문제다.

두 번째. 커뮤니티는 부가 기능이 아니다. 플랫폼 경쟁력의 핵심이다. 사람들이 머무는 이유는 콘텐츠 때문이 아니라 사람 때문이다.

세 번째. 구독은 콘텐츠를 파는 모델이 아니다. 습관을 파는 모델이다. 독서를 루틴으로 만들고, 토론을 습관으로 만들고, 기록을 자산으로 만들수록 사용자는 떠나기 어려워진다.

 

Everand의 전략은 전자책 서비스의 확장이 아니다.

독서라는 오래된 행위를 다시 설계하는 시도다.

읽고, 듣고, 기록하고, 토론하고, 공유하는 모든 과정을 하나의 구독 경험으로 묶고 있다.

결국 앞으로의 플랫폼 경쟁은 "무엇을 제공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경험을 통째로 소유하는가"의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Everand는 지금 그 싸움을 아마존 한가운데에서 시작하고 있다.

전자책의 시대가 끝난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책을 파는 것이 아니라, 독서 경험 전체를 구독시키는 시대가 시작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