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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이진관 재판장의 23년형 선고가 남긴 것

 

한동안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 이 나라에서 권력의 꼭대기에 있었던 사람들은 결국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빠져나가는 게 아닐까.

시간이 지나면 다 흐릿해지고, 책임은 사라지고, 남는 건 늘 “정치적 판단이었다”는 말뿐 아닐까.

그런데 이번 판결은 그 생각을 분명히 흔들어놨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 이진관 재판장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하면서 12·3 비상계엄을 형법상 내란이자 사실상 친위 쿠데타라고 명확하게 적시했어. 말 그대로, 기록에 남긴 거야.
이건 그냥 중형 선고가 아니야. 민주주의가 어디까지 무너졌고, 어디서부터 다시 선을 그었는지를 법의 언어로 정리한 판결문이야.

 

“정치적 과오”가 아니라 “내란”이라고 쓴 법원

이번 판결의 핵심은 형량 자체가 아니야.
가장 중요한 건!!! 이 사태를 무엇이라고 불렀느냐야.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을 혼란스러운 정치적 선택도, 과도한 판단도 아니라고 봤어.

헌정을 파괴하려 한 내란이라고 분명하게 규정했지. 

국회와 언론을 군·경찰력으로 통제하려 한 시도, 선관위 점거, 단전·단수 논의까지 모두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서 판단했어.

이게 왜 중요하냐면, 한국 정치에서 늘 반복되던 말들 있잖아.
“비상 상황이었다”, “국가를 위한 결정이었다” 같은 말들이 더 이상 법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선언이기 때문이야.

 

이진관 재판장이 본 한덕수의 책임

이 판결이 더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한덕수를 단순한 ‘윗선의 그림자’로 보지 않았다는 데 있어.재판부는 분명히 짚었어. 국무총리로서 계엄을 만류하고, 중단시키고, 제어할 책임이 있었고 그럴 수 있는 법적·정치적 위치에 있었다고.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어. 오히려 동조했고, 방조했고, 실행을 가능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고 봤지.

원격 국무회의 같은 합법적인 대안이 있었음에도 최소한의 제동조차 걸지 않았다는 판단은 이 사건을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책임 문제로 끌어올려. 

“몰랐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이 왜 법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지,
이번 판결은 그 이유를 아주 또렷하게 보여줘.

 

왜 23년형이 민주주의의 신호인가

특검은 15년을 구형했어. 법원은 그보다 8년이나 더 무거운 23년을 선고했지. 이건 단순한 가중 처벌이 아니야. 사법부가 스스로 기준을 세운 거야. 정권 최고위층이 관여한 내란에는 그에 걸맞은 형사 책임이 따른다고.

정치적 책임을 묻는 수준을 넘어서 형법의 언어로, 형량으로 선을 그은 거야.

한국 민주주의는 늘 이런 질문 앞에 서 있었지. 
과연 권력자도 법 앞에 설 수 있는가.

이번 판결은 적어도 1심에서는 분명하게 “그렇다”고 답했어.

 

민주주의는 완전히 회복됐을까

물론 이 한 번의 판결로 모든 게 끝났다고 말하긴 어려워.
항소심도 있고, 대법원도 있고, 정치적 프레임 싸움은 더 거칠어질 거야.

그래도 분명한 건 하나야. 민주주의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냉소에 처음으로 균열이 생겼다는 것.

쿠데타를 쿠데타라고 부르고, 내란을 내란이라고 기록하고,
그 책임을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사람에게 묻는 최소한의 시스템은 아직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번 판결은 충분히 의미가 있어.

 

그래도, 정의는 살아 있다

민주주의는 한 번에 회복되지 않아.
대부분은 이런 식이야. 늦게, 어렵게, 논쟁 속에서 한 줄씩 되찾아.

이진관 재판장의 이번 선고는 완벽한 결말이 아니라 회복의 시작에 가까운 판결이야.

아직 끝난 건 아니지만 이 한 줄만큼은 남길 수 있을 것 같아. 그래도, 정의는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