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AI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사람들이 두 가지로 나뉘는 것 같아.
하나는 “AI가 다 해줄 거야”
다른 하나는 “AI 때문에 인간은 끝났어”
둘 다 너무 극단적이야. AI는 분명 강력해졌고 앞으로 더 강해질 거야.
글도 쓰고 코드도 짜고 디자인도 하고 판단까지 보조해. 그런데 여기서 진짜 중요한 질문은 이거야.
“그래서 인간은 뭘 해야 하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니체의 위버멘쉬와 도스토예프스키의 라스콜니코프를 다시 떠올리게 돼.
그리고 여기에 지금 시대의 감각을 하나 더 붙여보고 싶어.
바로 ‘위보맨십’ 위버멘쉬 + 바이브 + 맨십. 조금 이상한 단어 같지만 지금 시대에는 꽤 필요한 개념이야.

위버멘쉬는 초능력자가 아니야
많은 사람들이 위버멘쉬를 “엄청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거의 마블 히어로처럼. 근데 니체가 말한 건 그런 초인이 아니었어.
위버멘쉬는 기존의 기준에 끌려다니지 않는 사람이야. 세상이 정해준 성공, 남이 만든 도덕, 사회가 강요하는 정답. 그걸 그냥 받아들이지 않고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를 스스로 정하는 사람. 이게 진짜 위버멘쉬야.
고통도 피하지 않아.
오히려 그걸 자기 성장의 재료로 써. 누가 허락해줘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만드는 사람.
쉽게 말하면 남의 인생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인생의 설계자가 되는 거지.
라스콜니코프는 실패한 초인이었다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도 자신이 특별한 인간이라고 믿었어. “위대한 인간은 법을 넘어설 수 있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지.
나폴레옹처럼 역사를 만드는 사람은 피를 흘릴 권리가 있다고 믿었어.
그래서 결국 살인을 저질러. 문제는 그 다음이야.
그는 자기 이론을 끝까지 감당하지 못했어. 불안했고 무너졌고 죄책감에 짓눌렸어.
왜냐하면 그는 진짜 초인이 아니었거든.
그는 가치를 창조한 사람이 아니라
남의 위대함을 흉내 낸 사람이었어.
자기극복이 아니라 자기기만이었지.
그래서 라스콜니코프는 “실패한 위버멘쉬”라고 볼 수 있어.
요즘 회사에도 라스콜니코프가 많다
이거 소설 이야기만 아니야. 생각보다 현실에 많아.
“나는 남들과 달라” “내가 더 잘 알아” “이 정도 희생은 필요해”
이런 말 하면서 책임은 안 지는 사람들. 특히 조직에서 자주 보여. 사용자를 숫자로만 보고 팀원을 도구처럼 보고 성과를 위해서라면 뭐든 괜찮다고 생각하는 태도.
겉으로는 전략 같아 보여도
사실은 불안과 오만이 섞인 거야. 라스콜니코프랑 꽤 닮았지. 비범함을 선언하는 건 쉽다.
근데 그 결과를 끝까지 책임지는 건 정말 어렵다. 그래서 중요한 건 “내가 특별한가”가 아니라 “내가 책임질 수 있는가”야.
AI 시대에는 위버멘쉬가 다시 필요하다
AI가 강해질수록 인간의 역할은 더 선명해져. AI는 답을 잘 만든다.
하지만 왜 이 답을 선택해야 하는지 그건 아직 인간의 영역이야.
AI는 도구고 방향은 사람이 정해야 해. 그래서 지금 필요한 건 더 빠른 기술 습득이 아니라 더 단단한 철학이야.
“나는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어떤 선택을 반복해도 괜찮은가” “무엇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인가” 이게 중요해.
AI 시대의 위버멘쉬는 기술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기술 위에 의미를 올리는 사람이야.
그래서 나는 ‘위보맨십’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위버멘쉬만으로는 조금 부족하다고 느꼈어. 너무 개인적이거든. 요즘은 혼자 잘하는 사람보다 함께 잘되는 사람이 더 중요해.
그래서 바이브가 필요해. 같이 일할 때 느껴지는 공기.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팀이 살아나는지 아니면 다들 숨이 막히는지.
이건 KPI에 잘 안 잡혀. 근데 진짜 중요해.
그리고 맨십도 필요해. 실력만이 아니라 태도. 승리보다 품격.
결국 어떻게 행동하는가. 그래서 위보맨십은 자기극복 + 관계의 분위기 + 책임의 태도 이 세 가지를 합친 개념이야. 혼자 잘난 초인이 아니라
팀과 서비스까지 함께 끌어올리는 사람.그게 AI 시대의 진짜 초인이라고 생각해.
위보맨십 있는 사람은 이렇게 행동한다
첫째, 도구보다 서사를 먼저 본다. “이 AI를 왜 쓰는가” 이 질문을 한다. 기능보다 사람의 하루를 먼저 본다.
둘째, 스펙보다 해석을 업데이트한다. 자격증보다 질문의 수준이 중요하다는 걸 안다. 같은 데이터를 보고도 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해.
셋째, 관계의 분위기를 책임진다. 자동화가 늘어날수록 남는 건 감정이야. 존중, 신뢰, 안심. 이걸 만드는 사람이 결국 오래 간다.
넷째, 실패를 숨기지 않는다. 라스콜니코프는 무너지는 걸 끝까지 감췄어. 위보맨십은 반대야. 불안을 드러내고 실패를 학습으로 바꾼다.
다섯째, 영원회귀 체크리스트로 일한다. “이 선택을 10년 뒤에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한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의사결정이 꽤 달라져.
결국 중요한 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냐가 아니다
AI 시대는 더 똑똑한 사람이 이기는 시대가 아니야.
더 빨리 배우는 사람이 무조건 살아남는 것도 아니야.
오히려 자기 기준이 있는 사람 책임을 피하지 않는 사람 함께 일하는 공기를 바꿀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강해질 거야.
위버멘쉬는 혼자 높은 곳에 서는 사람이 아니고
라스콜니코프는 위대해지고 싶었지만 무너진 사람이었어.
그리고 위보맨십은 혼자 올라가는 게 아니라 함께 올라가는 방식이야.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결국 사람은 누구와 일할 것인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이 질문에서 도망칠 수 없어. 그래서 지금 필요한 건 더 좋은 AI가 아니라 더 좋은 인간이 되는 일이야.
'LIFE' 카테고리의 다른 글
| OpenAI가 스마트폰 만든다고? 앱 없는 세상이 온다 (0) | 2026.04.28 |
|---|---|
| AI가 만든 음악이 하루 7만 곡? 그런데 아무도 안 듣는 이유 (0) | 2026.04.27 |
| 란 12.3 "그날, 누가 국회로 뛰어갔고 누가 길을 막았나" (0) | 2026.04.26 |
| AI 에이전트가 내 일을 뺏는 게 아니라.. 내 일을 다시 정의하게 만들고 있어 (0) | 2026.04.25 |
| SaaS는 이제 기능이 아니라 ‘관계’를 판다 (0) | 2026.04.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