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단 왕(Dan Wang)의 신간 『Breakneck: China's Quest to Engineer the Future』이 화제야.
단 왕은 이 책에서 중국을 ‘엔지니어 국가’, 미국을 ‘변호사 사회’로 정의하면서,
지금의 미중 경쟁을 완전히 새 프레임으로 해석해.
이게 단순히 ‘공산주의 vs 민주주의’의 대립이 아니라, ‘만드는 나라’ vs ‘막는 나라’의 싸움이라는 거지.
자전거로 본 ‘엔지니어 국가’의 민낯
단 왕이 2021년 여름, 중국 귀저우(Guizhou)성에서 충칭까지 자전거로 달렸대.
귀저우는 1인당 GDP 8천 달러의 가난한 지역인데, 세계 최고 수준의 인프라를 갖췄다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다리 100개 중 45개가 귀저우에 있고, 공항만 11개야.
근데 그중 절반은 비행기가 일주일에 열 번도 안 다닌대.
그게 바로 중국식 중앙계획의 양면이야, ‘압도적인 실행력’과 ‘경직된 낭비’가 동시에 존재하지.
선전의 기적: 손끝에서 태어난 혁신
단 왕이 진짜 높게 평가한 도시는 선전(Shenzhen)이야.
여긴 실리콘밸리의 복제판이 아니라, 말 그대로 거대한 공방(fab city)이야.
아이폰 조립하던 노동자들이 이제는 드론,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부품까지 직접 만들어내고 있지.
그가 말한 핵심 개념은 ‘공정 지식(process knowledge)’,
즉 현장에서 몸으로 배우는 암묵적 기술력의 축적이야.
“중국의 진짜 경쟁력은 논문이나 특허가 아니라 손끝에서 온다.”
이 한 문장이 중국 제조업을 가장 정확히 설명하는 말 같더라.
엔지니어 국가의 어두운 그림자 , ‘한 자녀 정책’
하지만 단 왕은 ‘엔지니어 사고방식’의 잔혹한 부작용도 숨기지 않아.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한 자녀 정책이야. 송젠(Song Jian)이라는 공학자가 단순한 인구 모델을 잘못 적용한 탓에,
1980년부터 2013년까지 3억 건 이상의 낙태와 수억 건의 불임 시술이 이뤄졌대.
그냥 수치가 아니라, 진짜 인간의 고통이지. 그가 묘사한 장면 중엔 이런 것도 있어. 임신 7개월 여성이 끌려가 강제 낙태를 당하고,
불임 시술을 거부하면 친척이 ‘인질’로 잡히는 일까지 있었다고 해.
엔지니어의 논리가 인간을 데이터로 보는 순간, 그 사회는 정확하지만 비인간적인 괴물이 되는 거야.
제로 코로나, 과학이 신이 된 사회
단 왕은 상하이 봉쇄를 직접 겪었어. 초기엔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 효과적이었지만, 오미크론 이후엔 완전한 재앙으로 변했지.
병원은 통계를 숨기려 코로나 진단을 거부했고, 그의 조부모님 두 분도 이 정책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해.
“엔지니어들은 과학을 따르지만, 과학이 곧 권력이 될 때 독재가 시작된다.”
이 말이 너무 와닿았어.
그건 단순한 방역 실패가 아니라,
‘데이터’와 ‘인간’을 바꿔 놓은 체제의 문제였지.
변호사 사회의 미국: 아무것도 못 짓는 나라
반면 미국은 엔지니어링보다 ‘소송의 나라’가 되어버렸어. 미국 국회의원 절반이 법학 전공자, 최근 대통령 절반도 로스쿨 출신이래.
단 왕은 “변호사 사회의 본질은 ‘창조’가 아니라 ‘방어’”라고 말하지. 대표적인 예가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프로젝트.
수십억 달러를 쏟고도 아직 레일 한 뼘 못 깔았대. 환경 규제, 소송, 승인 절차가 끝도 없거든.
결국 미국은 “부자와 연줄 있는 사람들만 잘 사는 나라”로 변해가고 있다고.
서로에게서 배워야 할 두 초강대국
단 왕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해. “중국은 변호사처럼, 미국은 엔지니어처럼 생각해야 한다.”
중국은 법적 보호장치가 부족하고, 미국은 만들려는 에너지와 실행력이 부족해.
둘 다 극단의 함정에 빠져 있는 셈이지. 그가 언급한 문장이 인상적이야.
“미국의 도시들은 한때 위대했던 문명의 잘 보존된 유적처럼 느껴진다.”
이건 냉소지만, 동시에 절실한 경고야.
즉, ‘균형의 시대’로 가야 한다
나는 이 책을 보고 ‘비율’의 문제를 생각했어. 엔지니어와 변호사의 비율, 실행과 규제의 비율,
이 두 축의 균형이 무너지면 사회는 곧 극단으로 간다는 거야.
중국은 ‘성과’에 중독됐고, 미국은 ‘절차’에 갇혔어. 그럼 우리나라는? 그 둘에 갇었나??
둘 다 미래를 만드는 힘을 잃어가고 있어.
단 왕이 말한 ‘Breakneck’, 즉 목이 부러질 만큼 빠른 발전이라는 표현은
지금의 미중을 완벽히 설명해주는 말 같아.
너무 빨리 달리는 중국,
너무 멈춰버린 미국.
결국 둘 다 ‘사람’을 잃은 거야.
“만드는 법을 잊은 세상에서”
이 책이 특별한 건, 중국을 악마화하지도 미화하지도 않는다는 점이야.
단 왕은 ‘기계와 인간의 경계’를 묻는 철학적 저자야. 그의 말처럼,
“미국은 만들 줄 아는 법을 잊었고,
중국은 멈출 줄 아는 법을 잊었다.”
결국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건,
‘엔지니어의 실천’과 ‘변호사의 양심’이 동시에 있는 사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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